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밀리아노 사파타 (문단 편집) === 사후 === 하지만 판초 비야의 경우도 그렇고, 사파타 또한 그 세력은 건재한 상태로 우두머리만 암살당한 상태라 사파타의 죽음이 카란사 정권의 승리로 직결되는 건 아니었다. 당장 사파타 암살 당시만 해도 그 권력 기반인 모렐로 주만 하더라도 사파타 세력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파타 암살 당시 사파타 본인과 판초 비야를 상대로 카란사 제헌정부군을 이끌어 승리했던 [[알바로 오브레곤]]이 되려 카란사 정권과 척을 지게 되면서 사파타의 뒤를 이어 남부 반군을 이끌게 된 힐다르도 마가냐(Gildardo Magaña)와 헤노베보 데 라 오 (Genovevo de la O)는 그 세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오브레곤과 동맹을 맺어 결국 1920년 오브레곤의 성공적인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다. 오브레곤은 딱히 좌파나 우파에 속한 인물이 아니었으나 몰락 지주 가문 출신으로서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과 토지문제에 대한 필요성은 상당히 깊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렇게 오브레곤 정권 성립과 이후 세속화 정책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크리스테로 가톨릭 반란군 진압에[* 이 와중 오브레곤 본인도 크리스테로 반란군에게 암살 당하나 정권의 기반과 권력 구조는 그 후임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예스]]에게 계승되었다] 사파타 세력이 큰 축을 차지하며 이웃한 미국과 달리 멕시코에서는 좌파의 정치적 지분이 상당히 커졌다.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 계열 예술의 부상과 [[러시아 혁명]] 이후 정권 다툼에서 쫒겨난 [[레프 트로츠키]]의 망명 수용, 그리고 훗날 [[스페인 내전]] 때 공화파에 대한 지원 같은 전간기 멕시코 정부의 좌파적 행보는 이때 성장한 지분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본인은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체계화된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런 멕시코의 활발한 농민, 노동자 운동에 있어 사파타라는 역사적 기억은 하나의 크나큰 구심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